朝 조선의 결
제26대 군주

고종 이희

제26대 군주 · 조선 국왕 / 대한제국 황제

생몰
1852–1919
재위
국왕 1863–1897 · 황제 1897–1907
지도에서 가계도·인물 관계 보기

생애와 통치

흥선군의 아들이 국왕이 되다

이명복은 흥선군 이하응과 여흥 민씨의 아들로 1863년 철종의 뒤를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정왕후가 수렴청정했고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주도했습니다. 경복궁 중건과 서원 정리, 서양 세력과의 충돌이 이 시기에 이어졌습니다.

친정과 개항기의 위기

친정 뒤 명성왕후와 외척의 영향력이 커졌고 개화 정책과 척사론이 맞섰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대외 관계가 넓어졌지만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전쟁·청일전쟁을 거치며 외국 군대의 개입과 내정 간섭이 심해졌습니다.

대한제국과 광무개혁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를 잃고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환궁 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토지 조사와 지계 발급, 군사·산업·도시 정비 등을 통해 국가의 기반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국권 상실과 퇴위

러일전쟁 뒤 일본의 강압이 심해져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습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뒤 강제로 퇴위했고 순종이 즉위했습니다. 고종은 덕수궁에 머물다 1919년 죽었으며 장례는 3·1운동의 배경과 연결됩니다.

역사 속 이야기

한양의 길 위로 전차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1898–1899 · 한성전기와 전차

대한제국의 변화는 황제의 옷과 국호에만 있지 않았다. 한성의 거리에도 새로운 시설이 들어왔다. 고종은 이미 궁궐에 전등을 들인 뒤 도시의 전기와 전차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1898년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시설을 만들고 운영할 권한을 얻었다.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은 실제 공사와 계약의 문제로 내려왔다.

선로를 깔고 전력을 마련하며 차량을 운행하는 데에는 외국 기술과 자금, 사업자의 협력이 필요했다. 국가가 의욕을 보인다고 자체 기술만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새 시설을 빨리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외국 사업자에게 의존하는 조건이 함께 생겼다. 편리한 교통수단 뒤에는 권리와 비용을 나누는 문제가 있었다.

1899년 시험 운행과 개통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거리에 나온 전차를 구경했다. 정해진 선로 위로 기계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모습은 도시의 이동 방식을 바꾸었다. 동시에 보행자와 차량이 같은 길을 쓰며 안전 문제도 생겼다. 새 문물의 등장은 놀라운 장면인 동시에 이전에 없던 규칙을 배워야 하는 일이었다.

전차가 달렸다는 사실만으로 대한제국이 충분히 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외세의 압력과 재정의 한계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멸망으로 끝났다는 결과만 알고 그 시대의 모든 시도를 빈껍데기로 볼 수도 없다. 고종의 시대에는 주권을 지키려는 외교와 함께, 사람들이 매일 걷는 거리를 바꾸려는 구체적인 사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함께 살펴볼 인물과 관계

배우자·부모·자녀뿐 아니라 정치적 협력과 대립, 왕위 계승으로 연결된 인물입니다. 구체적인 연결 이유는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종 시대를 다룬 사극

다음 작품은 이 인물이나 시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작 설정과 역사적 배경의 차이는 지도 속 작품 설명에서 확인하세요.

생애 자료

고종 이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